영어를 제외한 외국어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오늘부터 단어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서점에 갔다가 대개 난감한 상황을 겪게 된다.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같은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인기 있는 제2외국어들을 제외하면 공부를 할 수 있는 책이 별로 없다. 말하자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실력도 없으면서 원서를 집어들자니, 수준별 구분도 잘 돼 있지 않은데다 설명 한 줄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사더라도 거의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내가 프랑스어를 공부하려고 시도했던 시점에도, 한국에 있는 프랑스어 어학 교재의 종류는 지금보다 많이 없는 편이었다. 지방에서 공부를 해야하는 입장에서는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편인데, 거기다 책까지 선택의 폭이 좁다니, 이거야 말로 이중고 아닌가. 어디 알아볼 데도 없어서 그때는 이런 저런 책을 참 많이도 샀던 것 같다. 초급도 제대로 안 되면서 전공한 학생들이나 볼법한 「프랑스어 신문 읽기」를 사는가 하면 A부터 Z까지 사전처럼 단어를 나열한 「누보 프랑스어 어휘. 숙어」 또는 예의 빨간 「프랑스어 필수 어휘 사전」을 산다든지. 그렇다고 '왕초보' 같은 게 제목으로 붙어 있는 책은 살 생각이 없었는데, 그건 왜냐면 스스로가 왕초보가 아니라는 자의식도 있었지만, 수준이 올라갈 때마다 어휘집을 새로 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학 교재를 많이 사보고 수업도 진행하는 요즘, 가장 중요하게 깨달은 바는 어휘공부를 위해 책을 많이 살 필요는 없다는 거다. 앞서 언급했던 신문독해 같은 책은 초급에게는 절대 필요하지 않고, 무슨 통번역 대학원 같은 걸 지원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굳이 저 책으로 공부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르몽드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혹은 리베라시옹 같은 기사들을 자기가 직접 읽어내려가는 게 제일 좋다는 걸, 만약 당신이 그 정도 수준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것이다.
프랑스어 초보자에게 권하는 책
그렇다면 거두절미하고 초급부터 중급, 그리고 중고급 전단계 정도의 사람들을 아울러서 볼만한 책은 뭐가 있을까? 최근 프랑스어에 대한 검색을 알라딘이나 yes24를 통해 돌려본 결과, 예전에 내가 공부를 시작하던 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큰 차이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프랑스어 과외를 진행하는 요즘엔 초보자에게는 한국에서 출판된 책을, 그리고 문장을 읽고 쓰는 게 되는 중급자부터는 원서를 추천한다. 한국에서 출판된 책 중에는 하나의 구원 같은 책이 있으니, 그게 바로 다락원의 「내게는 특별한 프랑스어 어휘를 부탁해」다. 책을 살펴보면 여느 어휘집과 비슷하긴 하다. 그러나
1. 주제별로 어휘를 분류해놨다는 점
2. 적당한 길이의 완벽한 문장으로 구성된 예시문이 있다는 점
3. 듣기 파일을 제공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해 월등히 나은 어휘 공부 환경을 제공한다. 당신이 언어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주제별로 구분된 어휘를 공부하는 건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여주는데,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인간의 뇌는 구체적인 상황과 조건에 맞는 것들을 연결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단어를 기억해 나가는 방식으로 언어를 나열한다는 건, 단순히 저자가 자기 식으로 책을 쓰기 편하게 쓴 것일 뿐, 공부하는 이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생각해보자. 당신이 파리에 있는 문구점에 가는 상황이라면 어떤 어휘를 배우고자 하겠는가? 연필, 볼펜, 잉크, 종이, 도화지, 지우개 등 문구와 관련된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가격을 묻는 방법, 영수증 등을 뒤이어 생각할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데, 어째서 여전히 단어를 그저 알파벳 순으로 나열한 책들이 팔리고 있는지 의문일 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전식 나열이 좋다면 차라리 엣센스 불한사전을 사길 추천한다.)
프랑스어 중-고급자에게 권하는 책
당신이 어느정도 프랑스어를 공부했고, 어휘도 아는 상태라면 원서를 읽는 데에 그다지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 CLE 사에서 만든 책들은 사실 명불허전인데, 선생님 없이도 혼자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 한 두권 쯤은 갖고 있을 테니 출판사 이야기는 뒤로하고, 그 시리즈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 생각해보자.
내가 보기에 CLE 사에서 나온 어휘집은 Vocabulaire progressif du français 가 외국인 학습자에게 가장 최적화된 책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은 débutant(초보, 입문), intermédiaire(중급), avancé(중고급)로 그 수준이 나뉘는데, 사전을 종종 사용하더라도 문장을 읽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intermédiaire 를 구입하기를 추천한다. 이 책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제별로 어휘를 사용하는 상황을 분류했고, 각 상황별 어휘는 물론이고 표현까지 작은 일러스트와 함께 제시한다. 때문에 이해가 훨씬 더 쉽게 되는 편이다. 또 약간의 자연스러운 문법도 제시하기 때문에 완전히 기초가 다져지지 않은 사람, 초보자에서 중급자로 넘어간 사람, 그리고 고급 전단계의 사람까지 모두 보기에 좋은 책이다.
팁으로 이 책은 각 페이지 하단에 숫자를 프랑스어로 읽는 방법도 깨알같이 적어놨으니,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는 뭣보다 한 페이지씩 넘기며 차근차근 보기에 좋을 것이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프랑스어 어휘집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위 두 권을 이야기하면 '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어떤 걸 할까요?' 하는데, 대개 이런 질문은 초급자가 하는 경우가 많다. 중-고급 단계는 이미 자신이 어느 수준에서 뭐가 필요한지를 정확히 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필자를 믿고 그냥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둘 중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락원 책을 사서 단어를 하나 하나 살피며 공부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 책에 나오는 어휘들의 수준은 초급자에게만 맞춰진 것이 아니라 중급자까지 공부할 수 있는 어휘들이 많고, DELF나 DALF같은 시험대비는 물론, 듣기 파일을 활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 때문에 단기간 프랑스어 어휘를 늘리고 발음을 익히는 데에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출판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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