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경계에서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 안에 최대의 단어를 외울까?

coccinelle 2022. 9. 29. 05:14

새로운 어휘를 접할 때, 그 어휘를 어떻게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지, 그리고 파생된 어휘를 어떻게하면 더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지 어원공부와 관련해 언급한 바 있다. 예컨대 타르트 tarte 라는 어휘를 배웠다면, 그 어휘의 라틴어 어원인 torta가 '둥근빵'을 뜻하는 것이고, 우리는 여기서 쉽게 '또띠아tortilla' 를 연상해낼 수 있다. 이처럼 어원을 공부하면 배우는 어휘 자체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암기가 가능해지고, 이는 절대로 뇌에서 지워지지 않는 장기기억으로 전환된다. 아울러 역사와 문화까지 배우게 되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공동주의 프레임

그렇다면 이렇게 각개의 단어는 어원을 찾아가며 공부한다고 할 때, 어휘집을 들고 있는 우리는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많은 어휘를 어떻게 단시간 내에 공부할 수 있을까?' 무조건 단어책을 들고 외우려 들기 전에, 다음의 두 상황을 비교해 보자.


상황1. 당신은 헝가리의 한 기차역에 있고, 한 헝가리인이 다가와 당신에게 헝가리어로 말을 건다.

상황2. 당신이 이 기차역에서 티켓 발매 창구에 가서 티켓을 사려고 한다. 티켓 창구에는 헝가리인 역무원이 표를 판매하고 있다.


위 두 상황 중에서, 어떤 상황이 더 '대화'와 '상호이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가? 쉽게 말해서, 이 두 상황 중 어떤 상황에서 헝가리인과 당신이 언어를 하며 서로를 이해할 가능성이 높은가? 그렇다. 상황2가 더 서로를 이해하기 쉽다. 그건 역무원이 영어를 사용해줄 수 있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가 '공동주의 프레임' 속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공동주의 프레임이란, "의사소통 행위가 발생하는 공통의 장(common ground)"를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 간의 공통된 관심사 안에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것이다.

상황과 맥락, 어휘를 습득하는 열쇠

앞서 제시한 상황1에서, 그냥 기차역에 서 있는 당신과 당신에게 헝가리어로 말을 거는 헝가리인과는 서로의 공통된 관심사나 주제가 없다. 그는 자신이 타려는 기차가 어느 플랫폼으로 들어오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지금이 몇시인지 묻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기다리는데 심심하니 괜히 말을 걸어보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2에서는 당신과 역무원이 제한된 공간과 제한된 목표행위를 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티켓 발매 창구에 오는 사람은 티켓을 사거나, 표를 바꾸거나, 표를 취소하거나 셋 중의 하나를 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더 많다. 무엇이 되었든 그곳으로 오는 이는 '기차표'와 관련된 일을 하려고 오는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이 경우, 당신은 헝가리어 단어와 구, 그리고 간단한 표현들을 이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이 공통의 이해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한 것과 같이, 공통의 장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대화는 보다 순조롭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유아는 대개 1세쯤 언어를 습득하기 시작하는데, 그때의 습득 방식은 엄마가 가리키는 물건, 엄마가 하는 행동 같은 것들을 모방하며 습득한다. 이건 기본적으로 인간이 타인의 의도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회성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엄마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욕망이 아이로 하여금 언어를 배우도록 만든다. 외국어를 배우는 성인의 상태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아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경험과 상황적 맥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인지능력이 발달한 것이다. 그러니 아이보다 더 빠른 방식으로 언어를 배우려면? 그건 바로 "상황과 맥락에 연관된 어휘학습"이 행해질 때 가능하다.

사전식 어휘집을 버려라

그렇다면 내가 가진 어휘책을 어떻게 공부해야 많은 어휘를 짧은 시간 내에 배울까? 그건 쉽게 말하면 사전식 공부를 버리면 된다. 사전식으로 A부터 Z까지 나열된 책을 공부한다는 건, 쉽게 말하면 시간을 버리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만일 당신이 어휘공부를 하는 데에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 최대의 효과를 얻고 싶다면, 주제별로 어휘를 학습해야 한다. 요리에 관한 어휘를 배울 때 토마토, 마늘, 양파, 칼, 도마 같은 단어부터 시작해서 '데우다', '끓이다', '데치다' 같은 동사들을 함께 배워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어휘를 배울 때 컨텍스트context, 즉 맥락을 이해할 때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어휘를 습득할 수 있다.

그러니 어휘를 빨리 늘리고 싶다고 무작정 단어집을 아무것이나 집어들지 말자. 최소한 주제별로 분류가 돼 있고, 각 명사가 어떤 동사와 연관되어 사용되는지를 정리한 어휘집일 때 당신의 어휘력은 더 빨리 늘 수 있다. 그런 어휘를 어원을 찾아가며 공부하다보면 어느샌가 당신도 느낄 것이다. 모르는 새에 훌쩍, 어휘력이 늘어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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