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벽촌 출신 그녀는 어떻게 원어민 악센트를 갖게 되었을까?

coccinelle 2023. 4. 28. 11:19

파리에서 어학원 과정 없이 곧장 학업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이거다. '프랑스에 오래 살았어?' 프랑스에서 만난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프랑스인 친구들까지도 그런 말을 내게 곧잘 그런 말을 한다.

 

"프랑스에 언제 왔길래 프랑스어를 이렇게 잘해?"

 

똑같은 이야기를 프랑스에 체류하는 미국인, 혹은 영국인들과 같이 대화할 때도 듣는다.

 

"미국에서 얼마나 있다 왔니?"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을 할 때도 원어민 강사들과 대화를 할 때면 그런 이야기를 줄곧 듣고는 했다. 넌 한국 악센트가 없구나! 감탄하는 소리까지 곁들여서. 그러나 내 대답을 들으면 다들 놀란다.

 

'나는 미국에 여행조차 한 번 가본 적이 없어.'

 

나는 영어 유치원에 다닌 적도, 외국어고를 다닌 적도, 외국인학교 같은 델 가본 적이 없었다.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낼 때도, 수성구에서 가장 좋다는 학군에 있는 학교에 다닐 때도, 친구들 사이에서 '미국에 살다 왔다더라'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였다. 공부를 곧잘 한다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영어성적만큼은, 그리고 영어 악센트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있었다.

 

 

흔히들 그런 말을 한다. '영어 잘하는 사람은 영어 악센트 때문에 프랑스어를 못한다', '영어랑 불어는 소리 체계가 다르다' 하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다. 또 '외국어는 4세 이전 조기교육을 해야 발음이 좋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내가 영어를 시작한 시기는 10살 이후였고, 프랑스어는 스무살이 넘어 시작했다.

 

그렇다면 영어든 프랑스어든, 원어민과 같은 발음과 악센트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발음이 고민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자 적는다.

 

1. 매일매일 음성파일을 듣자.

내가 영어를 접한 때는, 90년대 말이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영어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망은 어찌나 컸던지, 내가 사는 울진 작은 촌구석까지도 각종 학습지 영어 프로그램이 들어왔다. 보통의 학습지가 그렇듯이, 내가 했던 학습지 프로그램도 매일같이 테이프(!)를 듣고 일정분량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듣고 따라하는 부분을 녹음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 학습지 교사가 방문할 때면 그 녹음한 부분을 같이 확인해봤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학습지를 공부했다는 게 아니다. 특정 학습지가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매일매일 음성 파일을 듣고, 그 소리, 억양, 발음을 따라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배워서 알게됐지만 언어학습에서 음성은 그 어떤 것들보다도 중요한 요소다. 어린아이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아이가 배우는 언어는 엄마, 아빠 같은 '소리'를 먼저 듣고 똑같이 발음하면서 어휘를 익히게 된다. 이는 인간의 언어 학습에서 '소리'를 통한 언어 이해가 가장 먼저 일어난다는 뜻이다. 문자에 대한 학습은 그 다음이다. 흔히 청음에 문제가 있으면 말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생기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먼저 잘 들어야, 잘 말할 수 있다. 듣지 못하면 말하는 것도 자연히 어려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인간은 본연적으로 문자를 해독하는 것 이전에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데에 보다 익숙한 존재다. 이 음성을 계속 들으면, 그와 마찬가지의 소리를 내는 것이 문자만 보고 학습한 경우보다 쉬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 '흉내내기' 기술 - 발음, 억양, 높낮이는 물론, 속도까지 똑같이 만들어보기

그러니 영어가 됐든 프랑스어가 됐든, 외국어를 학습할 때에는 조금 번거롭더라도 어떤 단어를 어떻게 소리내는지를 정확하게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학습지가 단어를 읽어주고 따라하는 시간을 주는데, 이 때를 놓치지 말고 직접 소리내어 따라하기를 부단히 해봐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따라하기를 할 때 자기 소리를 주의깊게 잘 들어보라는 것이다. 분명히 음성파일과 똑같은 소리가 나는지, 조금 더 비슷한 소리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본인이 스스로 교정해가며 해봐야 하는 것이다. 각 단어의 발음과 악센트, 높낮이는 물론 속도까지 비슷하게 따라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건, 쉽게 말해 '흉내내기'를 하는 것이다. 개그맨들이 하는 성대모사를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그들은 따라하고자 하는 사람의 발음, 목소리, 악센트를 정확하게 구사하는데, 이는 그만큼 따라하고자 하는 상대방의 말하는 방식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이를 자신이 똑같이 구현하기 위해 소리내어 연습했다는 것이다.

 

언어 학습 역시 마찬가지다. 영어를 할 때에도, 듣기 파일에서 나온 소리를 대충 '아, 이렇게 발음하는 거군' 하고 넘어가서는 원어민 발음을 습득하기가 어렵다. 그들이 내는 소리를 '똑같이 흉내낸다'는 기분으로 높낮이와 악센트까지 따라할 때, 그러니까 흉내내기 기술로 노력할 때, 그 발음은 온전히 내것이 된다.

 

 

 

3. 영화를 통해 표정과 몸짓을 관찰하기

이 따라하기 기술을 좀 더 확장해서 습득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프렌즈가 영어 공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 외 영화를 보면서 영어를 학습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나 시리즈물을 특정 언어로 계속해서 보고 듣는 건 생각보다 가장 강력한 언어학습 수단이 되는데, 그 이유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한꺼번에 전달하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소리뿐만 아니라 말투, 몸짓, 표정, 그리고 말을 하는 맥락, 더 근본적으로는 세계관까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여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자연스레 영어의 악센트를,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자연스러운 맥락 속에서 구사하게 된다. 그러면서 어떤 단어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른 말로도 사용된다는 뉘앙스까지도 익히게 되는 것이다.

 

초급단계의 학습자라면, 조금 천천히, 정확히 발음하는 어린이용 프로그램이나 시리즈를 시청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정확한 발음과 악센트를 배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예절에 맞는 대화 내용으로 구성되기에 그대로 따라해도 되는 대화내용이기 때문이다.

 

 

 

흥미진진한 영화 한 편을 보고 난 다음에 무의식적으로 그 영화에서 본 언어로 말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지. 아마 영어 고급학습자라면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가끔 프랑스인 친구들과 미국 영화를 시청하고 난 직후에 영어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던 적이 종종 있다. 언어를 이해하고 있고, 자연스레 그 소리에 익숙해지고 난 다음에는 생각도 언어의 경계를 넘어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영어 학습을 하겠다고 음성 파일을 듣거나 영화를 봤던 사람이라면, 외국인과 대화하는 상황에서 생각지도 않게 준비하지 않은 영어가 자연스레 나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흉내내기는 이처럼, 원어민 발음을 만들어주는 건 물론, 언어의 경계를 자연스레 넘도록 도와주는, 말하자면 외국어 습득의 궁극적인 기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