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경계에서

어휘 노트정리와 '고도의 집중력 발휘'

coccinelle 2022. 9. 14. 06:01

최근 어휘 정리와 공부에 대한 여러 뇌과학 및 인지심리 등에 대한 자료를 훑어보다, 나도 모르는 새에 즐기곤 했던 일들이 실은 꽤나 전략적이고 효과적인 공부법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심 놀라게 되었다. DALF나 DELF 시험을 준비하던 때에나, 그리고 그 이후에도 새로운 언어를 공부할 때에는 언제나 어휘들을 노트에 어원과 함께 예시를 정리하는 작업을 철저히 했고, 절대로 '지루하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가장 즐겼던 부분이 아닌가 싶다. 옥스포드 노트에다 새로이 배우는 단어를 적고, 그 뜻과 함께 어원을 사전에서 찾아 적고 예시를 완벽한 문장으로 적어내다보면 어느샌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몰입하고는 했는데, 이건 바로 "손과 뇌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신의 공부는 틀리지 않았다」의 저자 사오TV는 그 이유가 "운동, 감각, 언어, 기억과 관련 있는 뇌의 중추 신경 중 30% 가 손과 관련있다"고 그 근거를 제시한다. 게다가 뭔가를 적는 행위는 눈과 함께 협응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기에, "두 부위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동시에 활성화"되며, "글을 읽고 이해하며 정리, 요약하는 작업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어와 관련된 전두엽도 함께 활성화 된다는 것이다. 이 활동은 그러니까 말하자면 고도의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글만 따라 쓴다고 해서 집중력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새로이 배운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만 이 '몰입'이 일어난다.

 

 

 실제로 다른 포스팅에서 밝힌 어원을 밝혀 적는 어휘 노트 정리법은, 그냥 단순히 단어집을 따라서 적는 방법이 절대 아니다. 표제어를 보고, 그 단어의 뜻을 적고, 그 다음 사전으로 그 어휘의 어원을 찾는 일은 한 언어의 생성-발전-변화의 과정은 물론이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이 가진 역사까지 이해하게 만드는 단서가 된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한자를 공부하는 것이 고급 단계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는 건 인지상정이다. 요즘 누가 한자 쓰냐, 고리타분하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정수기', '수영장' 등과 같이 '수'가 들어간 단어가 어째서 물과 관련이 있는 것이 많은지를 설명하려면 한자 기반의 시스템을 설명할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어도 그 기반은 라틴어에 있기에, 어원을 이해하고 프랑스어 단어의 생성원리를 이해하면 훨씬 빠른 방법으로 어휘를 연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처음에 단어를 쓰는 과정에서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3시간이 지나도 어휘를 2개밖에 정리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아주 작은 기본 단위에서부터 차근차근 언어를 쌓아올리면, 그것이야 말로 고급단계로 가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나중엔 어려운 신문이나 전공책을 읽으며 발견하는 어려운 단어도 자신이 그동안 습득한 라틴어 어원 지식으로 그 뜻을 유추해가며 읽는 것이 자연스레 가능해진다. 상상해보라. 외국인이 오랫동안 다진 기본 한자 실력으로 신문을 천천히 읽어나가는 장면을. 그런 놀라운 장면이, 당신도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어휘 노트 정리에는 또 다른 이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마음을 고요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가끔 가족문제나 친구문제 같은 것들로 마음이 번잡할 때, 노트필기를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자 했던 기억이 있다. 단어를 쓰고 어원을 찾으며 공부하다보면, 어느샌가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필기를 하면 정서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어 집중에 방해되는 불안과 잡념이 사라집니다. 앞서 필기를 통해 전두엽이 활성화된다고 했는데요. 전두엽은 언어와 운동은 물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도 담당하기에 필기하면서 전두엽이 활성화되면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는 자기 통제력 또한 커집니다. 우리 뇌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특성이 있어서 과제에 집중하고 몰입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불안과 잡생각들은 잊힙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단어 필기를 하면서 심신의 안정을 찾고 마음이 고요해지며,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는 건 단지 학습자의 '느낌'에만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천천히 앞에 놓인 과제를 해 나가는 데에만 집중하면 불안과 번민에 매달렸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도닦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한국에서 프랑스어 능력시험장에 갔다가 많은 학생들이 시험장 밖에 서서 자신이 풀던 문제집을 들추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실 시험 문제를 보고 공부하는 건 내가 보기에 프랑스어 시험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아보이고, 게다가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아 보이는데도 오히려 그런 데에 더 매달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프랑스어시험은 문제은행식 자격증 시험이 아닌데도 말이다. 만약 당신이 곧 DELF 나 DALF 같은 시험을 앞두고 있고 긴박하다면, 차라리 이제껏 정리한 단어를 좀 더 되새기며 기억을 인출하는 연습을 하고, 어떻게 작문을 해나갈지, 또 논리적인 글의 구성이 어떤 모습인지 작문 답지를 분석해보는 걸  더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