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경계에서

외국어 공부 할 때, 문법보다 중요한 것?

coccinelle 2022. 1. 11. 01:15

한국에서 영어 교육법은 한국전쟁 이후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필자는 영어교육이 전공이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보자면 초기 문법 우선식 교육에서 점차로 회화 중심의 교육으로 옮겨갔다는 것만큼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 흐름은 서점가의 영어 관련 서적들 목록만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물론, 유아들의 영어 교육에 관한 관심도 한국의 소득수준이 높아져감에 따라 함께 높아졌음은 두말할 나위없다. 하기야, 이제는 겨우 몇개월도 안 된 아기를 데려다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앞으로도 무리없이 학업적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들을 하는 세상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조기 영어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고, 그럴만한 여력이 된다면 하는 것도 좋다. 자연스럽게 어떤 언어를 체득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언어로 체득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편리한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득해서 구사하는 언어는 객관화하는 언어와는 다른 것이고, 고급 수준으로 가려면 결국 문법 공부없이는 힘들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어를 한국인이라서 자연스럽게 하는 것과,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어를 이해하고 구사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문법이란, 애당초 이렇듯 체득하는 언어학습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국어를 구사하는 인간이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생각해보라. 한국인이 한국어 문법을 생각하고 말할 때가 잦은지, 아니면 외국인이 한국어 문법을 생각하며 말하는 때가 더 많은지. 

Préface d'une grammaire française PHOTO : iStock

1. 문법의 중요성

 그러므로, 외국어를 공부함에 있어서 문법 공부는 사실상 그 언어를 배우는 기초다. 문법은 모국어 사용자가 생각않고 말하거나 쓰는 내용들을 외국어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기초를 제공한다. 앞서 말한 이런 회화에 치우치는 기류가 '회화 공부를 돕는 어플리케이션'이나 '전화영어' 같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인과 직접 대화하면, 프랑스인과 대화하면 영어나 프랑스어가 '자연스레 늘 것'이라는 호언장담과 함께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언어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려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에 계속적으로 노출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끊임없는 연습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기 이전에, 문법적인 바탕이 있어야 자연스럽고 풍부한 대화도, 문장도 가능해지는 법이다. 전화영어나 스마트폰 앱을 쓰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언어를 정복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만 했다고 해서 내 영어 실력이, 프랑스어 실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말자. 이 방법은 단지 스스로가 노력하고 있다는 환상, 그리고 스스로가 외국어를 '잘한다'는 착각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왜냐하면 '대화'라는 '소리 언어'의 특성상, 모든 오류와 실수를 그 자리에서 바로잡기는 그야말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오류 수정은 첫째로 대화 흐름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둘째로 학습자의 동기부여 측면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교육법에서도 권하지 않는다. 그러니 대개의 회화수업은 웃고 떠들다 수업을 마치기 마련이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해볼 수도 있겠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 문법 공부를 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알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뭐 때문에?'

문법 공부를 싫어했고, 그래서 내신에서 영어 문법 문제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다음의 근거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 복잡한 문장을 이해하고 구사해야하는 고급 단계로 가려면 문법 공부는 필수다. 문법적 지식이 부족한 채로 외국어로 된 책을 읽으면 금방 지친다. 단어를 하나 하나 찾으며 공부할 수는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단어의 배열 속에서 그것들의 총체적인 의미를 읽어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둘째, 문법적 지식은 뉘앙스와 컨텍스트에 연결되는 것으로서, 이것이 결여되면 종종 오해가 발생하기 십상이다. 프랑스어 보다는 영어 사용자가 더 많을 테니 영어로 아주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few 와 a few의 차이는 사실상 부정문과 긍정문의 차이에 가깝다. 사소하게는 이런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공부를 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셋째, 자기 언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를 통한 세계관의 확장이 가능해진다. 영어를 배운 이들은 한국어와 어순이 다르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먼저 느끼고, 그 다음엔 그 화법 자체가 갖는 특성에서 한국어와 다른 점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영어나 프랑스어 동사가 기본적으로 '타동사'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분사형태를 통한 변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생각해본 적 있는지. I'm interested in you라고 해야 하지, I'm interesting in you 라고 하면 틀린 이유를. 이같은 것들은 아주 작은 차이지만, 한국어가 갖는 자동사 기반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다른 언어를 면밀히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그 언어가 갖는 화법의 특징을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세계관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2. 문법보다 중요한 것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문법 공부를 무작정 시작하기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앞서 글의 시작부분에서 밝힌 것과 같이, 한국에서 외국어(영어) 교육법의 조류는 문법에서 회화로 점차 변화해왔다. 한국에 들어온 대부분의 문법책은 실상 일본어로 된 책을 번역, 수입한 것이 그 기초가 돼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것이 태반인데, 이 때문에 문법 용어 역시 번역어에 기반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품사', '전치사', '관계대명사'와 같은 용어들은 그러니 한자에 기반한다. 대개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우리는 '용법', 그러니까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골몰하는데, 이 경우 용어 자체에 대한 이해를 결여한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하자면 '분사'가 무엇을 가리키며, 그 정의가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작정 현재분사와 과거분사의 용법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분사란 어째서 '분'사 라고 불리는지, 이것이 동사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용법을 익히려고 하면, 당연하게도 복잡한 문법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문법 자체가 제멋대로라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포기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선 이런 언어의 차이를 객관화시켜 이해하는 선생이 별로 없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어에 재능이 있었거나, 그도 아니면 좋은 집안 환경을 통해 해외에서 공부한 경우, 그도 아니면 외국어 자체를 객관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저 좋아해서 열심히 한 경우. 물론 각기 나름의 방법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체득하려고 노력한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단언할 수 있다. '이건 외워야 해' 라고 학습자를 암기 지옥으로 떠미는 때가 잦은 선생일수록, 그다지 좋은 선생은 아니라는 걸. 특히나 영어처럼 어렸을 때 배우기 시작하는 외국어라면 모를까, 성인 학습자에게 그런 방식은, 흥미도, 열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영어는 어렸을 때부터 접할 기회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언어로 체득했으나, 이는 실상 성인이 되어 프랑스어를 공부하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엔 문법 용어를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무한 반복하다보면 자연스레 되는 것이었고, 때문에 복잡한 문법 공부를 하지 않고도 외국어를 잘할 수 있다는 일종의 신념 비슷한 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한국에서 공부한다는 건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을 가정하는 일이다. 일단 좋은 자료가 부족하고, 프랑스인을 만나기가 어렵고,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고, 그마저도 학생 수가 적으면 알리앙스 같은 곳은 폐강시켜 버렸다. 영미권 국가에 한 번도 가지 않고도 영어를 잘한다는 걸 자부심으로 알던 사람으로서, 어학연수 같은 데에 무작정 돈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운 좋게도, 좋은 선생님을 많은 우여곡절 끝에 만났고, 어학연수 없이 프랑스 학위과정에 오는 데에 성공했다. 필자에게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묻는다. 어떻게 가능하게 했냐고. 그래서 필자는 요즘 그렇게 대답하곤 한다. 기초에 충실하고, 그리고 그 기초를 이끌어줄 좋은 선생님, 그리고 계속해서 조금씩이나마 노력하는 자세가 사실은 가장 중요했다고.